새벽 편지
새벽에 깨어나
반짝이는 별을 보고 있으면
이 세상 깊은 어디에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 하나 출렁이고 있을 것만 같다
고통과 쓰라림과 목마름의 정령들은 잠들고
눈시울이 붉어진 인간의 혼들만 깜박거리는
아무도 모르는 고요한 그 시각에
아름다움은 새벽의 창을 열고
우리들 가슴의 깊숙한 뜨거움과 만난다
다시 고통하는 법을 익히기 시작해야겠다
이제 밝아 올 아침의 자유로운 새소리를 듣기 위하여
따스한 햇살과 바람과 라일락 꽃향기를 맡기 위하여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를 사랑한다는 한마디
새벽 편지를 쓰기 위하여
새벽에 깨어나
반짝이는 별을 보고 있으면
이 세상 깊은 어디에 마르지 않는
희망의 샘 하나 출렁이고 있을 것만 같다
곽재구
두근두근 내 인생
바람은 함부로 제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하며 시시각각 몸을 바꿔 딴 데로 달아났다. 혹은 누군가 그 이름을 부를 때까지만 그 이름이고자 했다. p194
‘내가 아는 한 시인은 꽃이 피는 걸 ‘핀다’라고 안하고 ‘목숨을 터트린다’라고 했어. 근사하지?’라는 구절도 엄청 넣고 싶었는데 가까스로 참았다. 누가 봐도 명백한 구애, 명백한 노력처럼 보이는 표현은 안할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어떤 여지 같은 것은 남기고 싶었다. 들키기 위해 숨어 있는 ‘틀린 그림’처럼. 부정이 아닌 시치미가, 긍정이 아닌 너스레가, 들꽃처럼 곳곳에 심겨 있길 바랐다. p217
두근두근 내 인생김애란
내게 일어난 가장 좋은 일
그녀가 말했다.
“오스카 와일드는 이런 이야기를 했대. ‘냉소주의자는 가격은 알지만 가치는 모르는 사람이다.’라고”
그녀는 가격으로 평가할 수 없는 것들을 말했다.
친구와 나누는 공감의 시간.
낯선 사람에게서 발견하는 친밀감.
우리들을 하나로 이어 주는 보이지 않는 손.
그런 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냉소주의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간혹 사람들은 스스로를 의심하기도 한다.
그런 태도는 주로 자신에 대한 가격을 매기는 순간에 찾아온다.
자신에 대한 가격을 매기게 되면
자신보다 더 높은 가격표를 달고 있는 사람들이 먼저 생각나는 법이다.
그런 순간에는 자신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녀가 다시 내게 말을 걸어 왔다.
“그러니까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은, 너의 가치를 생각해 보라는 거지.
지금 네가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건,
네가 가격표를 먼저 생각하기 떄문이야.”
그녀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내게 도움을 주곤 했다.
그녀는 나의 가장 소중한 벗이고 나의 연인이며 나의 희망이었다.
내가 실의에 빠져 있을 때마다
그녀의 믿음과 조언이 나를 다시 북돋아 주곤 했다.
그녀와 만나면서 내가 알게 된 건
내가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빈 곳이 채워진 느낌이 들었다.
그녀를 만난 것이 나에게 일어난 일 중 가장 좋은 일이다.
김성원 <그녀가 말했다>
사진과는 다른 인간의 기억
시험 때면 가끔씩 이런 푸념을 늘어놓는 학생들을 보곤 한다. “내 머리가 컴퓨터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어떤 내용이든 머리에 집어넣기만 하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을 테니”라고 말이다. 그 심정은 이해하지만 인간의 기억이 컴퓨터의 기억과 같다면 우린 정말 이상하게 말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다. 친구들로부터 영영 따돌림을 받을 지도 모른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살펴보자.
인간과 컴퓨터가 지니는 기억의 다른 목적

여대생인 지영은 학생식당에서 친구인 진희와 자신이 어제 소개팅을 한 남학생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진희가 지영에게 묻는다. “어제 소개팅 한 그 남자 어땠어?” 이 질문에 지영은 이렇게 대답한다. “응, 키는 176cm이고 얼굴에는 작은 점이 3개 정도 있었구, 피부는 약간 검더라. 신발은 검은색 구두를 신었어.” 이에 진희는 “아니, 내 말은 그 남자 어땠냐구?” 이에 지영은 다시 이렇게 말한다. “아이, 참 내 말 잘 들어봐. 셔츠는 파란색이었구, 얼굴에 8개 정도 여드름이 있더라구, 머리숱이 많았었구….음…그 다음에 또 뭐가 있더라?” 드디어 진희는 화를 내기 시작한다. “너 정말 짜증난다. 그래서 그 사람 어땠냐구?”
이 대목에서 짜증을 내며 물었던 진희의 질문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사람 어땠니?”라는 물음은 얼핏 들으면 ‘기억’을 물어보는 것 같다. 하지만 실은 지영이 그 남학생에 대해 내린 ‘평가’를 듣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지영이 그 남학생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기억’을 얘기하자 자신의 질문과 다른 대답을 하는 것에 짜증을 낸 것이다. 그렇다. 인간의 기억은 분명 컴퓨터와는 다른 목적을 지니고 있다. 세상과 타인들은 대부분의 경우 나에게 예전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정확한 내용을 묻는 다기 보다는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컴퓨터에 우리는 무엇을 요구하는가? 전지현이나 현빈 같은 미녀 미남의 사진을 스캔해서 이미지 파일로 컴퓨터에 저장해 놓은 뒤 다시 그 파일을 더블클릭 할 때 컴퓨터는 그 이미지 그대로를 출력해 줄 뿐 “주인님, 이 여자분 정말 미인이네요.”라든가 “사용자님, 이 남성 정말 미남인데요?”라는 메시지를 결코 내놓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한 달 전에 가 보았던 맛집, 재작년 크리스마스 이브, 혹은 2002년 월드컵. 이런 것들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일어났던 실제 일들에 대한 세세한 목록들이 도서관의 책들처럼 정리된 것이 아니라 내가 그 때 경험했던 느낌과 평가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무언가이다. 그래서 인지 심리학자들은 이런 말을 좋아한다. 컴퓨터에게 부여된 기억의 목적은 어떤 대상을 있는 그대로 저장하고 복원하는 것이지만, 인간에 있어서 사고의 목적은 ‘그 대상을 이해하는 것’이며 그 이해한 바를 담는 것이 바로 기억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이 무언가를 기억해 낸다는 것은 있었던 무언가가 아닌 있었던 무언가에 대한 ‘나의 이해’를 꺼내는 것이다.

인간이 무언가를 기억해 낸다는 것은 있었던 무언가가 아닌 있었던 무언가에 대한 ‘나의 이해’를 꺼내는 것이다. <출처 : NGD>
이해를 목적으로 하는 인간의 사고체계는 종종 우리의 기억에 편집과 재구성, 그리고 심지어는 왜곡까지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결코 나쁘지만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인간 기억의 목적에 더 부합되는 것이니까. 주위에 친구나 가족이 있다면 아래의 실험을 한 번 해보시라(여러 사람을 동시에 해 보면 더 좋다).
1단계: 다음과 같은 단어들을 하나씩 차례로 보여준다(보여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면 들려줘도 괜찮다.) 보여줄 경우에는 각 단어를 2~3초 정도 보여준다. 한 번에 하나씩만 보여줘서 모든 단어를 한꺼번에 보지는 못하게 해야 한다. 사전에 사람들에게는 나중에 어떤 단어를 봤는지 기억검사를 할 것이라고 알려준다.
2단계: 모든 단어들을 다 보여준 직후에는 ‘517에서 13씩 계속 빼기’와 같은 역산과제를 시킨다. 그러면 사람들은 ‘504, 491, 478…’과 같이 계속해서 답을 내놓아야 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자기가 봤던 단어들을 인위적으로 암기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인지심리학자들은 일반적으로 기억에 무엇이 남는가를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통상 이런 방해과제를 사용한다.
3단계(기억검사): 사람들에게 자신이 본 단어들을 가능한 많이 써보라고 한다.
4단계(채점): 자, 이제 채점을 해 보자. 채점은 이렇게 하면 쉽다. 아래와 같은 단어들을 하나씩 들려줘 보자(맨 마지막 단어인 ‘창문’ 하나만 빼고는 모두 실제로 1단계에서 사용됐던 단어들이다.) 그리고 자신이 그 단어를 정말 기억해 냈는지 각 단어를 불러줄 때마다 대답해 달라고 하면 된다.
* ‘문’: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억해 냈다고 얘기한다. 맨 처음 들은 단어이니까.
* ‘유리창’, ‘창틀’, ‘문지방’, ‘욕조’, ‘차고’: 이 단어들에 대해서는 답으로 썼다고 얘기하는 비율이 조금씩 줄어든다.
* 마지막으로 ‘창문!’: 흥미롭게도 이 단어를 기억해 냈다고 말하는 사람이 정말 많다. 1단계에서 나온 단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
다. 필자가 국내외에서 다양한 계층을 상대로 실험해 본 결과 최소한 50% 많게는 80%의 사람들이 이 단어를 기억해 냈다고 대답한
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아주 강한 확신을 가지고 ‘나는 분명히 창문이라는 단어를 봤단 말입니다.’라고 억울해 하기도 한다. 명백
한 오답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인간 기억의 속성


우리 기억이라는 것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때로는 기억하고 싶은 것이나 기억해야 할 것들이 기억나지 않아서 애를 먹을 때도 있고 기억해 낸 것이 정확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출처 : NGD>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창문’이라는 단어는 보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창문’을 구성하는 요소인 ‘유리창’이나 ‘창틀’같은 단어들은 경험했다. 따라서 그 구성요소들을 통합하는 ‘창문’을 자연스럽게 ‘재구성’ 즉, 만들어 냈던 것이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기억이다. 따라서 우리 기억이라는 것은 컴퓨터의 하드디스크처럼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때로는 기억하고 싶은 것이나 기억해야 할 것들이 기억나지 않아서 애를 먹을 때도 있고, 위의 예에서와 마찬가지로 기억해 낸 것이 정확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심지어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이 오히려 더 내 의식을 장악해 괴로울 때도 있다. 도대체 기억이란 무엇일까?
미국 하버드 대학 심리학과의 신경과학 및 기억 분야 권위자인 대니얼 샥터(Daniel Schacter) 교수는 자신의 저서인 ‘기억의 일곱 가지 죄악(The seven sins of memory)’를 통해 기억의 오류를 7개의 형태로 구분하였으며 이를 통해 인간의 기억이 지니는 특징과 취약성을 설명하였다. 처음 세 개의 죄들은 간과 혹은 누락의 죄(sins of omission)로 볼 수 있으며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해하기 쉬운 인간 기억의 제한적 측면들이다. 다음 네 가지 죄들은 개입 혹은 간섭의 죄(sins of commission)로 분류가 될 수 있는데 이 죄들에 대해서는 조금 더 구체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하나씩 알아보자.
1. 소멸(Transience)의 죄
이는 가장 흔한 경우로 기억 속의 어떤 항목이나 대상에 대한 접근가능성(accessibility)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적으로 감소함을 의미한다. 나이를 먹음에 따라 자연스럽게 감소가 진행되기도 하지만 뇌의 해마(hippocampus)나 측두엽(temporal lobe) 등에 손상을 입을 경우 심각한 장애를 경험할 수도 있다. 영화 메멘토(Memento)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한다.
2. 정신없음(absent-mindedness)의 죄
무언가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놓치는 경우를 말한다. 유명한 첼리스트인 요요마(Yo-Yo Ma)가 뉴욕에서 택시 트렁크 안에 넣어두었던 250만불 짜리 첼로를 잊고 내려버린 일은 유명하다.
3. 막힘(blocking)의 죄
설단(tip-of-the-tongue)현상이란 것이 있다. 이는 기억에 저장되어 있는 정보에 접근하는 것이 잠시 동안 어려운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은 자기가 그 정보를 기억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따라서 ‘입 안에서 맴도는데 말을 할 수가 없다.’라는 표현을 하는 것이다.
4. 피암시성(suggestibility)의 죄
잘못된 정보가 기존의 기억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가장 흔한 경우는 목격자 증언 시에 질문에 답을 하면서 그 질문 안에 있는 내용이 기억에 침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 목격자에게 경찰관이 “정지(stop) 표지판 앞에서 그 자동차가 얼마나 빠르게 지나갔나요?”라고 묻는다. 그렇다면 이 질문의 핵심은 자동차의 속도이다. 따라서 목격자는 자신의 기억에 있는 그 자동차의 속도에 초점을 맞추어 대답을 한다. 얼마 지난 후 경찰관이 다시 그 목격자에게 묻는다. “그런데 그 자동차 옆에 있던 표지판이 정지였나요? 아니면 양보(yield)였나요?” 이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지 표지판이었다고 대답하곤 한다. 즉 경찰관의 질문에 있던 내용이 기억 속으로 심어진 것이다.
5. 편향(bias)의 죄
현재의 지식이나 믿음 혹은 상태가 과거에 대한 회고, 즉 기억에 왜곡된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의미한다. 즉, 과거에 일어났던 일 자체가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현재 혹은 직전에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과거의 사건을 해석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인간의 판단
과 의사결정에 있어서 다양한 편향 요인을 연구한 공로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카너먼(Daniel Kahneman)은 최근 인간의 행복에 관한 기억의 영향력에 대해 매우 재미있는 설명을 하고 있다. 다음은 그의 강연에서 자주 사용되는 일상생활의 예이다.
“오디오를 통해 클래식 음악을 하나 듣고 있다. 이 음악에 심취하여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곡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 ‘끼이익’하는 소음이 나오며 곡이 끝나버렸다.”
이 경우 사람들은 어떻게 그 시간을 기억할까? 상대적으로 훨씬 더 긴 시간 동안 그 음악을 통해 좋은 시간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직전의 그 소음이 모든 것을 망쳐버렸다라고 기억하기 십상이다. 불쾌한 일로 헤어진 애인에 대한 연애 기간 동안의 기억은 대체적으로 부정적이다. 그런데 가슴을 저미는 사연으로 인해 헤어진 연인과 관련된 만남의 기억들은 마찬가지로 한편의 영화와 같다. 인간은 지금에 기초해서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훨씬 더 긴 시간 동안 음악을 들으며 좋은 시간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부분의 소음이 모든 것을 망쳐버렸다라고 기억하기 십상이다. <출처 : NGD>
6. 지속성(persistence)의 죄
또한 어떤 기억은 원하지도 않는데 계속적으로 떠올라 우리 자신을 괴롭힌다. 주로 트라우마(trauma)와 같이 충격적이거나 비극적인 사건들이 주로 여기에 해당한다. 중요한 경기에서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선수가 그 기억으로 인해 재기를 못하고 사라져간다거나, 끔찍한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이 그 기억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오죽했으면 Schacter는 이를 두고 “기억이라는 감옥에 갇힌 비극적 죄수”라는 표현을 썼을까.
7. 오귀인(misattribution)의 죄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귀인(attribution)이란 용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귀인이란 자신이 경험한 사건이나 현상의 원인을 말하는 행동이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습관적으로 이러한 귀인을 하려고 한다. 친구의 멍든 눈을 보면서 우리는 “어제 누구랑 싸웠어?”라고 자연스럽게 묻는다. 이는 친구의 멍든 눈의 원인을 어제 벌어진 싸움에서 찾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잘못된 귀인은 오귀인이라 부를 수 있다. 기억에 있어서 이러한 오귀인은 피암시성과도 매우 관련이 있는 측면으로서 기억의 출처(source)를 혼동하는 것이다. 출처의 혼동은 매우 빈번하게 일어나지만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기억의 내용 자체는 명확하게 보존하려 노력 하더라도 기억의 출처에 관하여는 크게 신경쓰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만들었다는 역사적 사실 자체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처음에 어디에서 배웠는가는 잘 모른다. 책을 통해서 배웠을 수도 있고 선생님께 들었을 수도 있으며 TV에서 보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언제 처음 배웠거나 경험했는가 자체가 중요한 사항(예를 들어, 애인을 처음 만난 곳과 때)이 아닐 경우라면 우리는 대부분 그 기억의 출처를 모르고 있다. 따라서 서로 독립적인 두 사건이 하나로 오해되어 혼란을 일으킬 수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끔찍한 폭탄테러가 일어났다. 얼마 후 테러범이 잡혔는데 그 범인을 TV에서 본 렌트카 업체 직원이 “저 사람이 차를 빌릴 때 다른 사람이 있었다.”라고 증언하였으며 경찰은 공범이 있다고 판단하여 그 다른 한 사람의 몽타주를 통해 공개수배를 벌였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는 그 직원이 다른 날 목격한 어떤 사람에 대한 기억과 그 테러범에 대한 기억을 합쳐서 같은 시점에 본 두 사람이라고 착각하여 벌어진 소동이었다. 1995년 4월 미국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오클라호마시티의 연방정부청사 폭탄 테러 사건 때의 일이다.
생생함과 친숙성이 주는 함정

그런데도 우리는 자신의 기억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가도 결국에는 틀렸다는 사실을 알고 당황해 하곤 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우리는 우리 기억의 정확성을 가늠해 보는 척도로 기억 자체가 아닌 그 기억에 대한 생생함과 친숙성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어떤 것을 기억해 냈을 때 그 내용이 생생하거나 친숙할수록 그 기억은 정확한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기억의 정확성과 이러한 느낌들은 서로 독립적이라는 점이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이런 주관적 느낌들에 기초해 나 자신의 기억의 정확도를 판단하는 것일까? 바로 이러한 느낌들은 자신감이나 확신감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기억의 정확성을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 인생에 일어난 수많은 일들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또 다른 누군가가 매번 시험문제를 내 주지 않는다면 말이다. 다만 자신감이나 확신감을 경계해 볼 필요는 분명히 있다. 다양한 기억의 죄가 바로 이 느낌들을 잘못 사용해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한심한걸 아는데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는 뭐지 ? 너무 약해서”
덜 아프려고 그런건데 더아프고,
덜 생각나려고 그런건데 더생각나고,
후회하지 않을 줄알았는데, 후회하는 것 같다.”
어젯밤
어제 밤,
또 나는 그렇게 내뱉어 버렸다.
필터 없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또 필터없이 내뱉어 버리고 있었다.
또 한숨이 쉬고 싶어졌다.
멍하니 미스트 같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천천이 흔들리는 나무를 쳐다보았다.
눈물이 나려했다.
한심하기 짝이없다.
그리고 나의 친구 두명의 이별은
마음이 아팠고, 고등학교 시절 나의 모습을 떠올렸다.
혹시나 마음 아플까, 어떻게 말해야할까 고민했었는데.
결국 그고민은 부질없는 것이었고, 내가 말했지만 내가 거절당한 거였다.
예전의 사람을 못잊었다는 그런..
“결국은 나를 이용한거군”
“외로움을 못견딘 채 하나의 방편으로 날 사용한거군”
그러고선 깨달았겠지.
아 , 난 아직 그사람을 못잊었구나
난 그것도 모른 채, 혹여나 상처줄까
친구 사이로 돌아갈 수 있을까
마음 졸이고 글자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웠는데
걱정은 모두 물거품이되어 흩어져 버렸었지.
그 모습을
생각하게 한 어젯밤.
친구는 후회한다고 했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고 했다.
나도 후회했다.
그 둘의 앞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에
말리고 싶었다.
하지만 말리지않았다.
그렇게 후회했다.
또한 널 만나기전 날
촉촉하게 내리던 비를 맞으며 걸어갔던, 그날을 생각하게 했다.
멍져있다.
어제 밤은 멍져있었다.
마음이 먹먹했다.
이호선전철안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르겠는 정체불명그사람
악취를 풍기는
주젼사람들은 힐끔힐끔 그사람을 쳐다보면서 인상을쓰고 코를막는다.
퇴근길 지하철은 만원상태인데 그사람옆자리는 텅비어있다.
고개를 떨군채 손목에 때인지 뭔지를 계속 긁고있는 그사람
궁금해진다.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그런데 나도 인상을 쓰고 있고있었다.
김영하, 포스트잇, 234PAGE
이성에게 자신을 오래도록 기억하도록 하는 두가지 방법 하나는 변태를 가르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음악을 선물하는 것이다.. 영화 <나인 하프 워크>의 나자주인공 미키 루크는 킴 베신저에게 벼룩시장에서 물건을 훔치라고 충동질한다. 방바닥을 기어다니라 하고 창녀와으 2대 1섹스를 강요한다. 금지된 것들은 태생적으로 매혹적이며 그러므로 금지된 세계로 월경했던 경험은 쉬 잊혀지지 않는다. 그에 비하면 음악을 주고 받는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레코드가게에 들러 CD를 고른다. 돈을 주고 포장하여 이성에게 주면 된다. 받은 사람은 집에 돌아와 포장을 벗기고 CD를 플레이어에 밀어넣은 뒤 편안한 자세로 음악을 들으면 된다. 거기엔 아떤 터부도 없다. 얼핏 보기에 선물을 주고 받는 행위는 아름답고 평화롭고 건전해보인다. 그런데 세울이 가면 문제가 달라진다.사람이 떠나도 음악은 남는다. CD를 버려도 어디선가 누군가는 그 음악을 틀고 있으므로 우리는 거리에서, 카페에서, 술지벵서 무방비 상태로 함께 듣던 음악의 습격을 받게 된다. 그럴 때 우리는 어제 퇴직한 우편 배달부처럼 우울해진다.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음악에 휘둘리게 된다. 그럴 때 음악은 변태의 추억보다 훨씬 더 잔혹하고 집요하다.
김영하-포스트잇 234PAGE
너의 하늘을 보아, 박노해
너의 하늘을 보아
박노해
네가 자꾸 쓰러지는 것은
네가 꼭 이룰 것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지금 길을 잃어 버린 것은
네가 가야만 할 길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다시 울며 가는 것은
네가 꽃피워낼 것이 있기 때문이야
힘들고 앞이 안보일 때는
너의 하늘을 보아
네가 하늘처럼 생각하는
너를 하늘처럼 바라보는
너무 힘들어 눈물이 흐를 때는
가만히 네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가닿는
너의 하늘을 보아
안개중독자, 이외수
사랑아
그대가 떠나고
세상의 모든 길들이 지워진다
나는
아직도 안개중독자로
공지천을 떠돌고 있다
흐리게 지워지는
풍경 너머 어디쯤
지난날
그대에게 엽서를 보내던
우체국이 매몰되어 있을까
길없는 허공에서 일어나
길없는 허공에서 스러지는
안개처럼
그토록 아파한 나날들도
손금 속에 각인되지 않은 채로
소멸한다
결국 춘천에서는
방황만이 진실한 사랑의 고백이다
이외수
(Source: skinnyfists)
1Q84, 무라카미하루키, 고양이마을
제8장 덴고 Q 슬슬 고양이들이 올 시각이다
한 청년이 가방 하나만 들고 혼자서 마음 내키는 대로 여행을 한다. 목적지는 딱히 없다. 열차를 타고 가다가 왠지 끌리는 장소가 있으면 거기에서 내린다. 숙소를 정하고 마을을 구경하고, 흡족할 때까지 그곳에 머문다. 싫증이 나면 다시 열차를 탄다. 그것이 그가 휴가를 즐기는 방식이었다.
차창 밖으로 아름다운 강이 보였다. 구불구불 흘러가는 강을 따라 우아한 초록빛 구릉이 이어지고, 그 중턱에 아담하고 고즈넉한 느낌의 마을이 있었다. 오래된 돌다리가 걸려 있었다. 그 풍경은 그의 마음을 유혹했다. 이곳이라면 맛있는 송어요리를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열차가 역을 정차하자 청년은 가방을 들고 내렸다. 그곳에서 내린 승객은 그 말고는 없었다. 그가 내리자 곧바로 열차는 떠나버렸다.
역에는 역무원이 없었다. 무척 한가한 역인 모양이다. 청년은 돌다리를 건너 마을까지 걸었다. 마을은 괴괴하다. 그곳에는 사람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모든 가게의 셔터가 내려졌고 관청에도 인적이 없다. 달랑 하나뿐인 호텔의 데스크에도 사람이 없다. 벨을 눌러도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그곳은 완전한 무인 마을로 보였다. 어쩌면 다들 어딘가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아침 열시 반이다. 낮잠을 자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다. 아니면 무슨 이유가 있어서 사람들이 이 마을을 버리고 모두 함께 떠났는지도 모른다. 어떻든 내일 아침까지 다음 열차는 오지 않을 것이고, 여기서 밤을 보내는 수밖에 없다. 청년은 정처 없이 산책을 하며 시간을 때웠다.
하지만 사실 그곳은 고양이들의 마을이었다. 해가 저물자 돌다리를 건너 수많은 고양이들이 마을로 들어왔다. 다양한 무늬에 다양한 종류의 고양이들이다. 보통 고양이보다 상당히 크지만 그래도 고양이다. 그 광경을 보고 깜짝 놀란 청년은 마을 한 가운데 있는 종루에 올라가 몸을 숨겼다. 고양이들은 익숙한 몸짓으로 가게 셔터를 올리고, 혹은 관청 책상에 앉아 저마다 일을 시작했다. 잠시 후 다시금 수많은 고양이들이 다리를 건너 마을로 들어왔다. 고양이들은 상점에 들어가 쇼핑을 하고, 관청에 가서 사무적인 볼일을 처리하고, 호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고양이들은 주점에서 맥주를 마시고 명랑한 고양이 노래를 불렀다. 손풍금을 켜는 고양이도 있고, 거기에 맞춰 춤을 추는 고양이도 있었다. 고양이들은 밤눈이 밝기 때문에 등불이 거의 필요하지 않았지만, 그날 밤은 보름달이 마을 구석구석을 비춰주어 청년은 종루 위에서 그 모든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새벽녘이 가까워오자 고양이들은 가게 문을 닫고 저마다 용무를 끝내고 줄줄이 다리를 건너 그들이 왔던 원래의 어딘가로 돌아갔다.
날이 새고 고양이들이 사라지고 다시 무인 마을이 되자, 청년은 종루에서 내려와 호텔 침대에서 허락도 없이 잠을 잤다. 배가 고프면 호텔 주방에 남아 있던 빵과 생선요리를 먹었다. 그리고 주위가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다시 종루에 올라가 몸을 감추고 새벽이 오기까지 고양이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열차는 점심 전과 저녁 전에 역에 들어왔다. 오전 열차를 타면 앞으로 갈 수 있고, 오후 열차를 타면 원래 왔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역에서 내리는 승객은 한 사람도 없고, 그 역에서 열차를 타는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열차는 꼬박꼬박 역에 정차하고 일분 후에 발차했다. 그래서 만일 마음만 먹는다면 그 열차를 타고 으스스한 고양이 마을을 뒤로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직 젊은 그는 호기심이 왕성했고 야심과 모험심도 풍부했다. 그는 고양이 마을의 불가사의한 광경을 좀더 보고 싶었다. 그곳이 언제 어떻게 고양이들의 마을이 되었는지, 마을은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 고양이들은 그곳에서 과연 무엇을 하는지. 가능하다면 그런 것도 알고 싶었다. 세상에 이런 신기한 광경을 목격한 사람은 자신 외에는 아무도 없을 터였다.
사흘째 밤에 종루 아래 광장에서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어째 사람 냄새가 나는 거 같지 않아?” 고양이 한 마리가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요 며칠 들어 묘한 냄새가 나는 거 같아.” 누군가가 코를 킁킁거리며 그 말에 대꾸했다. “실은 나도 그런 느낌이 들던 참이야.” 그렇게 말을 보태는 자도 있었다. “이상하네. 인간이 이곳에 찾아올 일은 없을 텐데.” 또 누군가가 말했다. “암, 그렇고말고. 인간이 우리 고양이 마을에 들어올 리가 없지.” “하자미나 그치들의 냄새가 나는 건 분명하단 말이야.”
고양이들은 몇 개의 그룹을 짜서 자경단처럼 마을을 구석구석 수색하기로 했다. 작정하고 나서면 고양이들은 냄새를 아주 잘 맡는다. 그 냄새의 근원지가 종루라는 것을 알아내는 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들의 부드러운 발이 종루 계단을 밟고 올라오는 소리가 청년의 귀에도 들렸다. 꼼짝없이 들켰구나. 그는 생각했다. 고양이들은 인간 냄새에 지독히 흥분하고 화가 난 것 같았다. 그들은 몸집이 크고, 날카로운 발톱과 희고 날카로운 이빨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 마을은 인간이 발을 들여서는 안 되는 장소인 것이다. 들키면 어떤 꼴을 당할지는 모르지만, 어떻든 그 비밀을 알고 있는 인간을 얌전히 이 마을에서 내보내줄 리는 없었다.
세 마리의 고양이가 종루에 올라와 킁킁 냄새를 맡았다. “이상하네.” 한 마리가 기다란 수염을 움찔움찔 떨면서 말했다. “냄새는 나는데 인간은 없어.” “거참, 진짜 이상하네.” 다시 한 마리가 말했다. “하지만 아무튼 여기에는 아무도 없어. 다른 곳을 찾아보자.” “어허, 정말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군.” 그리고 그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멀어져갔다. 고양이들의 발소리가 계단을 내려가 밤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청년은 가만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도 어떻게 된 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고양이들과 그는 좁은 공간에서 말 그대로 코를 맞댄 모습으로 마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걸 못 보고 지나갈 리 없었다. 그런데 고양이들의 눈에는 왜 그런지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그는 자신의 손을 눈앞에 쳐들어보았다. 분명 손은 보인다. 투명해진 것이 아니다. 이상하다. 어쨌거나 아침이 되면 역으로 가서 오전 열차로 이 마을을 떠나도록 하자. 계속 여기 있는 건 너무도 위험하다. 이런 행운이 계속될 리는 없다.
하지만 다음 날, 오전 열차는 역에 서지 않았다. 그의 눈앞에서 속도도 늦추지 않고 그대로 지나가버렸다. 오후 열차도 마찬가지였다. 운전석에서 기관사의 모습이 보였다. 차창에는 승객들의 얼굴도 보였다. 하지만 열차는 정차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의 눈에는 열차를 기다리는 청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역사驛舍조차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오후 열차의 뒷모습이 멀어져가자 주위는 여느 때 없이 괴괴하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슬슬 고양이들이 올 시간이다. 그는 자신이 상실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곳은 고양이 마을 같은 게 아니다. 그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곳은 그가 상실되어야 할 장소였다. 그곳은 그 자신을 위해 준비된, 이 세상에는 없는 장소였다. 그리고 열차가 그를 다시 원래의 세계로 데려가기 위해 그 역에 정차하는 일은 이제 영원히 없는 것이다.
나는 너에게 말했다.
고양이 마을에 온 것 같다고.
우리의 열차는 우리를 다시 원래의 세계로, 예전의 그곳으로 데려갈 수 없었고
이제는 왠지 우리앞에 열차가 정차하는 일은 영원히 없을 것만 같았다.
다가갈까. 기다릴까. 지켜볼까.
마음가전(김소연).p109
관계에 대해서 눈을 뜨기 이전,아주라주 어렸을 적애는, 주저없이 누군가에게 다가갔던 기억이 있다. 좋으면 그냥 다가갔다. 아주 어린 날의 일이다. 산책 길에 만난 반가운 강아지라든가, 만져보고 싶은 물건을 향해서 주저 없었다. 손을 미리 쭈욱 뻗고 입을 벌려 웃으며 다가갔다.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럴 때,어떤 거부를 당했더라도 그 상처가 깊지 않았는지, 상처에 관해선 기억조차 없다. 기대하고 설레고 그래서 마음먹고 다가간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실망도 없었을 테고 , 실망이 있었을지라도 짧았을 것이다. 다가갈 또 다른 것들이 세상에는 봄날의 꽃들처럼 만발했을 시절이었으므로.
언젠가부턴 다가가지 않고 기다리게 됐다. 내가 실망을 하게 될까봐 다가가지 못했던 건 아니다. 다가가기엔 수줍음이 너무 컸다. 다만 수줍기 때문애 어찌할 줄을 몰랐다. 마냥 기다리면서, 하염없이 해가 뜨고 별이 지는 풍경들 아래에서 그 풍경을 고스란히 앓았다. 기다리고 있어서 초조하거나 힘이 들거나 하진않았다. 기다린다는 그 자체에 대해서 그냥 그대로 실컷 앓았다. 이렇게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가 눈치챌까 봐 오히려 걱정했다. 들키는 게 두려워서가 아니라,들킨다는 게 더 쑥쓰러웠기에 그랬다. 소녀 시절은 그렇게 보냈다.
열정이 무엇인지, 정념이0 무엇인지를 처음 알게 된 때에, 그러니까 관계에 대해 눈을 처음 뜨게 된 그때에는, 언제나 ‘다가갈까, 기다릴까’ 를 고민하게 됐다. 고민에 빠져서 내가 무엇을 향해 다가가려고 하는지마저 잠깐씩 잊을 정도였다. 그때는 고민이라는 말보더는 어쩌면 계산이라는 말아 더 맞을것이다. 관계에 대해, 꼭 원하던 것을 얻고 싶기에, 조심스러워서 하던 갈등이었기 때문이다. 기다리기만 하다가는 꼭 잃을 것만 같아서 다가갔고, 다가갔다가는 꼭 상처 입을 것만 같아서 기다렸다. 서성이느라 모든 날들이 피곤했다. 불 켜진 그 집 창문을 바라보거나, 텅 빈 그네에 앉아서 고민에 빠지거나 , 우연을 가장하기 위해 꼭 만날 것만 같은 길목에서 불철주야 서성였다. 그 와중에서 행복에 빠지기도 했고 불행에 빠지기도 했다. 행복이거나 불행아거나 간에 , 그 어디든 빠져서 허우적대던 시절이있다.
이제는 다가갈까 기다릴까를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그냥 지켜보게 됬다. 이것은 살아온 날들이 맘든 현명한 태도이지만은 않다. 정념의 불꽃을 다스렸더는 절제 또한 아니다. 소중한 것들이 내 품에 들어왔던 기억, 그 기억에 대해 좋은 추억만을 갖고 있진 않기애, 거리를 두고 지켜 볼 수밖에 없는, 일종의 비애인 셈이다. 나를 충족시키는 경우보다 결핍 그대로가 더 나은 경우를 경험해보았다. 그것은 나만을 생각했던 시절들을 지나와서 관계 자체를 배려하게 됐다는 뜻도 있지맘, 그 배려에는 쓰디쓴 상처들이 배어 있다. 지켜보고 있음이 꽤 오랫동안 변치않는 은은한 기쁨을 선사해줄 거라는 패배 비슥한 믿음도 또한 있다. 그러므로 바라던 것이 나애개 도래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게 되었다. 바라던 것들이 줄 허망함을 더 이상 겪고 싶지 않은 ‘외면’이란 감정의 부축을 받으며.
